한국의 명시2010. 10. 25. 16:58


    성북동 비둘기

    -
    김광섭 -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 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溫氣)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聖者)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서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김광섭(金光燮 , 1905~1977) 시인, 호는 이산(怡山), 함북 경성 출생, 일본 와세다대학 영문과 졸업, 『 해외문학』과『 문예월간 』동인으로 활동 시작. 고요한 서정과 냉철한 지적 성찰의 초기시와 근원에의 향수와 사회비평적인 의식이 다분한 후기시를 통해 구체적 표현의 아름다움과 세련된 시어, 자유롭고 다채로우며 광범한 소재로 건강하고 생명력 있는 작품을 발표함. 시집에 『동경<'37>』『마음<'48>』『해바라기<'58>』『성북동비둘기<'69>』등이 있으며. 대표작으로 〈성북동비둘기〉〈고독〉〈산〉〈해바라기〉〈마음〉〈저녁에〉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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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라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