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시2010. 9. 29. 13:48

    밤에 쓰는 편지

- 김사인 -


그대로 하여
저에게 이런 밤이 있습니다.

오늘따라 비까지 내려 더 바삐 서두르고
우산이 없는 여학생 아이들은
무거운 가방을 들고 울상입니다.

팔다리가 있는 짐승들은 모두
어디로 총총히 돌아갑니다.

그러나 저기
몇 안 남은 잎을 바람에 마저 맡기고
묵묵히 밤을 견디는 나무들이 있습니다.
빛바랜 머리칼로 찬 비 견디는
풀잎들이 있습니다.

그대로 하여
저에게 뜨거운 희망의 밤이 있습니다.


    김사인(金思寅, 1956~) 충북 보은 출생, 서울대 국문과 졸업, 1987년 시집 『밤에 쓰는 편지』를 발간, 시로는 〈 양변기 앞에서〉〈내 고향 동네〉 〈노랑나비〉 〈새〉 〈인절미〉〈사람들가슴에〉등이 있으며, 평론으로 「 최근 소설의 한 모습<'84>」「국문학 연구의 리얼리즘<'84>」 「소설의 왜소화<'85>」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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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도라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