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초, 피렌체의 명문가인 메디치가 출신의 카트린은 파리의 앙리 2세에게 시집을 가면서, 키를 커 보이게 하기 위해 초핀을 가지고 갔는데 이 카트린의 구두는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켜 유럽 전역의 구두상들은 곧 비슷한 구두를 만들어내는 일에 착수하는 계기가 되었다. 17세기의 작가 두스는 “베네치아의 여성들은 나무(초핀), 옷, 그리고 여자의 몸 -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한편 이 당시 서양의 도시들은 사람들의 배설물이 넘쳐흐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비라도 내리게 되면 도로 전체가 오물 진창이 되기 일쑤였다. 베르사유 궁전에도 화장실이 없어 궁중의 남녀 귀족들은 곳곳의 오물을 피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했는데 굽이 높은 하이힐이 유용하였다. 18세기에 이르자 루이 15세의 연인 ‘마담 드 퐁파두르’가 뒷굽이 높은 구두 ‘루이힐’를 유행시켰는데 이것이 하이힐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후 하이힐은 비로소 여성의 전유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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