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이 힐 이 야 기

고대 그리스에서는 무대위의 배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코르토르노스’라는
통굽 구두를 신게하였다 한다.
그러다 15세기에 이르러 오늘날의 하이힐과 유사한 굽이 높은 구두인 초핀 (Chopine)이 생겨났는데 이것은 높은 받침대, 혹은 속이 빈 원통 위에 얹힌 신발로, 평균 높이는 6~18인치였다.





16세기 초, 피렌체의 명문가인 메디치가 출신의 카트린은 파리의 앙리 2세에게 시집을 가면서, 키를 커 보이게 하기 위해 초핀을 가지고 갔는데 이 카트린의 구두는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켜 유럽 전역의 구두상들은 곧 비슷한 구두를 만들어내는 일에 착수하는 계기가 되었다. 17세기의 작가 두스는 “베네치아의 여성들은 나무(초핀), 옷, 그리고 여자의 몸 -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17세기에 하이힐을 본격적으로 신은 사람들은 남자였는데 루이 14세도 자신의 작은 키에 관한 열등감을 뒷굽이 높은 구두로 대신하려 했다.
궁중의 남녀 귀족들이 그를 따랐지만 얼마 안 있어 남자들은 본래대로 돌아왔으나 궁중의 여성들은 계속해서 높은 힐의 구두를 신었다.

한편 이 당시 서양의 도시들은 사람들의 배설물이 넘쳐흐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비라도 내리게 되면 도로 전체가 오물 진창이 되기 일쑤였다. 베르사유 궁전에도 화장실이 없어 궁중의 남녀 귀족들은 곳곳의 오물을 피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했는데 굽이 높은 하이힐이 유용하였다.

18세기에 이르자 루이 15세의 연인 ‘마담 드 퐁파두르’가 뒷굽이 높은 구두 ‘루이힐’를 유행시켰는데 이것이 하이힐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후 하이힐은 비로소 여성의 전유물이 되었다.
또한 롱 스커트는 힐에 자주 밟혀 점차 스커트의 길이가 짧아지게되자 남성들에게 멋진 다리를 구경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게 되었다.
점차 옷을 오물로 더럽히지 않으려는 본래의 목적은 사라지고 하이힐은 바디라인을 매력적으로 부각시키는 패션의 기능만이 남게 되었다.








20세기에 의사들은 ‘높은 굽 때문에 발에 티눈과 기형이 생긴다’고 부작용을 경고하지만 하이힐의 인기는 여전하다.
특히 영화의 역사가 시작된 20세기, 하이힐을 신은 여배우의 모습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심지어 마릴린 먼로는 “나를 성공의
길로 높이 들어 올려준 것은 바로
하이힐이었어요”라고 고백할 만큼
하이힐은 수세기 동안 여성의 지지자
역할을 해왔다.


원문참조 : http://cafe.daum.net/yunjeong3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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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라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