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시2012. 1. 6. 16:17


설야(雪夜)

 

                         - 김광균 -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 밤 소리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야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취인 양 흰 눈이 내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에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먼 곳의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디찬 의상을 하고

흰눈은 나려 나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

김광균(金光均 , 1913~1993) 시인, 개성출생, 동아일보로 데뷔. 『 자오선』 『 시인부락』동인, 다분히 서구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온건하고 차분한 회화적인 이미지, 소담하고 선명한 수채화풍의 터치, 달콤한 애상을 곁들인 신선한 현대적 감각으로 소시민의 감정을 채색하여 독자의 마음을 매혹시킨다. <와사등><추일서정><설야> 등의 시가 애송되고 있으며, 『 와사등<'39>』『기향지<'47>』『황혼가<'57>』『 은수저』『 미국에게 주는 시』『 영미교(永微橋)』등의 시집이 있음.

Posted by 도라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