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시2011. 9. 8. 11:26


농 무

-신경림-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꺼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꺼나

신경림(申慶林 : 1935~ ) 시인, 충북 청주 출생. 동국대 영문과 졸업. 1956년 『문학예술』추천으로 등단. 시집으로 『농무(農舞)<'73>』『새재』『달넘세』등이 있음. 그의 시는 농촌을 배경으로 우리의 정서, 한, 욻분, 고뇌 등을 평ㅂㅁ한 토속어를 사용하여 밀도있게 표현하고 있다. 대표작으로 <농무><갈대><겨울밤> 등이 있음.

Posted by 도라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