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시

승무 / 조지훈

도라산 2010. 8. 18. 17:00


승 무

- 조지훈 -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아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조지훈(趙芝薰, 1920 ~ 1968) 시인 으로, 본명은 '동탁'
        이며 경북 영양 출생, 혜화전문학교를 졸업하였고
        1946년 박두진, 박목월과 함께 『청록집』을 발간하여 청록파
        시인으로 불림.
        1939년 <문장>지에 <고풍의상>과 <승무>를 추천받아 문단에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