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시

풀 / 김수영

도라산 2010. 9. 28. 11:02



        -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이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金洙暎 : 1921 ~ 1968) 시인, 서울출생, 연세대국문과 졸업, 1945년 『예술부락』으로 등단, 60년대 반서정의 입장에서 참여시의 기치를 들음, 시집으로는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합동시집, '48) 『평화에의 증언』(합동시집, '57) 『달나라의 장난<58>』 등이 있고, 〈눈〉〈푸른하늘〉 〈풀〉등의 시들이 널리 읽히고 있음.